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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검 아래서, 너를 선택하다
― 랑그릿사 II 로맨틱 소설 (리아나 버전)
새벽빛이 전장을 스치듯 비추고 있었다.
부서진 성벽 위, 엘윈은 랑그릿사를 땅에 꽂은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검에 남은 빛은 아직 식지 않았고,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곁에 서 있는 여인은 리아나였다.
흰 망토 자락을 여미며, 그녀는 엘윈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렇듯—말보다 먼저 마음을 살피는 눈빛으로.
“엘윈…”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엘윈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제국의 힘, 어둠의 약속, 그리고 빛의 진영.
그 모든 갈림길에서 그는 영웅이 되기를 요구받았지만,
정작 사람으로서의 자신은 늘 뒤로 밀려나 있었다.
리아나는 한 발짝 다가와, 그의 손등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차갑게 굳은 전사의 손과, 기도하듯 포개진 손.
“전 알아요.”
“당신이 왜 망설이는지.”
엘윈의 눈이 흔들렸다.
“당신은 늘 선택해야 했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포기해야 했어요.”
“하지만… 전 당신이 그런 선택을 혼자 짊어지지 않았으면 해요.”
엘윈은 처음으로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리아나.”
“만약 내가 빛을 선택한다면… 더 많은 전쟁이 시작될지도 몰라.”
“어둠을 선택하면, 세상은 나를 증오하겠지.”
리아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미소 지었다.
약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미소였다.
“그래도 괜찮아요.”
“전… 당신을 믿어요.”
그 말은 명령도, 부탁도 아니었다.
기도에 가까웠다.
엘윈은 랑그릿사를 들어 올렸다.
검신에 새겨진 문양이 새벽빛과 함께 반응하며 빛나기 시작했다.
“난 세상을 위해 싸우지 않아.”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맺힌 눈물은 빛에 닿아 사라졌다.
“그럼 전,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게요.”
“설령 그 길이… 고통으로 가득하더라도.”
빛은 전장을 덮었고,
어둠은 물러났다.
훗날 사람들은 이렇게 전했다.
랑그릿사의 주인은 위대한 영웅이었지만
그가 끝까지 붙잡은 것은
왕좌도, 신의 뜻도 아닌—한 여인의 신뢰였다.
그리고 리아나는,
그의 선택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 바람보다 먼저 달려온 마음
― 랑그릿사 II 로맨틱 소설 (쉐리 × 엘윈)
전투가 끝난 평원에는 아직 화약 냄새가 남아 있었다.
엘윈은 방패에 몸을 기대고 숨을 골랐다.
그때,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며 내려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야, 엘윈!”
쉐리였다.
붉은 머리칼을 질끈 묶은 채, 창을 어깨에 걸고 있었다.
마치 전투가 아닌 달리기 경주를 막 끝낸 사람처럼 숨이 찼다.
“또 혼자서 무리했지?”
“영웅 노릇은 좋은데, 죽을 생각은 없지?”
엘윈은 피식 웃었다.
“네가 하늘에서 다 보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어.”
“당연하지.”
쉐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네가 쓰러지면, 내가 제일 먼저 내려와야 하잖아.”
쉐리는 엘윈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옷은 긁혀 있었고, 무릎엔 상처가 남아 있었다.
“아프지 않아?” 엘윈이 물었다.
“이 정도야 뭐.”
“전장에선 상처 없는 게 이상하지.”
하지만 그녀는, 엘윈이 손을 뻗자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그래도,”
“네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면 좀 신경 쓰이네.”
엘윈은 조심스럽게 붕대를 감아주었다.
쉐리는 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지?”
“난 원래 겁 같은 거 잘 안 내거든.”
“근데 요즘은 네가 위험해질 때마다… 바람이 멎는 것 같아.”
엘윈의 손이 잠시 멈췄다.
“쉐리.”
“넌 왜 항상 이렇게 무모해?”
쉐리는 고개를 돌려, 정면으로 그를 바라봤다.
도망치지 않는 눈이었다.
“같이 싸우는 동료니까.”
“아니—”
잠시 침을 삼켰다.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말을 던지듯 내뱉었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전장의 바람이 다시 불었다.
쉐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을 들었다.
“자, 이제 쉬는 시간 끝.”
“다음 싸움도 같이 가는 거지?”
엘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쉐리는 활짝 웃었다.
“그럼 됐어.”
“내가 하늘에서 제일 먼저 도착할게.”
그녀는 다시 바람 속으로 뛰어올랐다.
날아오르는 그 모습은 자유였고, 용기였고—
엘윈은 깨달았다.
자신은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나란히 달리고 싶어졌다는 걸.
훗날 병사들은 말했다.
엘윈은 검으로 전장을 가르지만
쉐리는 바람으로 그의 길을 열었다고.그리고 둘은
멈추지 않는 싸움 속에서도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 질투의 바람, 기도의 침묵
― 랑그릿사 II 삼각관계 로맨스
(쉐리 · 엘윈 · 리아나)
전투가 끝난 뒤의 진영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승리했음에도,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엘윈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쉐리와 리아나가 같은 천막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쉐리는 갑옷을 벗지도 않은 채 창을 벽에 세워두고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눈은 리아나에게 고정돼 있었다.
“너,”
“엘윈이랑 꽤 오래 얘기하더라?”
리아나는 놀라지 않았다.
늘 그렇듯, 잠시 숨을 고른 뒤 조용히 대답했다.
“그분이 많이 지쳐 보였어요.”
“전… 기도해 드렸을 뿐이에요.”
“기도.”
쉐리는 그 말을 씹듯이 되뇌었다.
“참 편한 말이네.”
쉐리는 한 걸음 다가왔다.
바람이 천막을 흔들었다.
“난 말이야,”
“엘윈이 위험하면 바로 날아가.”
“피 튀는 곳, 죽을지도 모르는 곳—전부.”
“그건…”
리아나가 고개를 숙였다.
“당신의 용기죠.”
“아니.”
쉐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선택이야.”
잠시 침묵.
“난 그 사람을 좋아해.”
쉐리는 숨김없이 말했다.
“그리고 숨길 생각도 없어.”
리아나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저도…”
리아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엘윈을 믿어요.”
“좋아한다는 말은 안 하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질 거라 생각했어요.”
쉐리는 웃지 않았다.
이번엔 진짜 질투였다.
“그래서 더 얄미워.”
“네 옆에 있으면 엘윈이… 쉬는 얼굴이 되거든.”
그 순간, 천막 입구의 천이 들렸다.
“둘 다—”
엘윈이었다.
“그만해.”
“이건 싸움이 아니야.”
쉐리는 엘윈을 돌아봤다.
눈빛이 흔들렸다.
“아니, 엘윈.”
“이건 싸움이야.”
“네 마음을 두고 하는.”
리아나는 한 발 물러섰다.
“전… 답을 요구하진 않겠어요.”
“당신이 누구를 선택하든, 전 기도할게요.”
쉐리는 그 말에 분노했다.
“또 기도야?”
“그렇게 뒤로 빠지는 게 정말 네 방식이야?”
리아나는 고개를 들었다.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뒤로 물러나는 게 아니에요.”
“믿고 기다리는 거예요.”
엘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쟁보다 어려운 침묵이었다.
쉐리는 이를 악물었다.
“…알겠어.”
“그럼 난 기다리지 않을게.”
그녀는 엘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난 계속 옆에서 싸울 거야.”
“네가 쓰러질 때, 가장 먼저 손을 잡을 거야.”
“그게 내 방식이니까.”
그날 밤,
쉐리는 하늘을 날며 바람을 가르고,
리아나는 불 꺼진 천막에서 조용히 기도했다.
그리고 엘윈은—
두 사람 모두를 잃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 질투의 끝, 가장 위험한 하늘
― 랑그릿사 II 삼각관계 로맨스 (후반부)
다음 작전 회의는 짧았다.
너무 짧아서, 엘윈은 불안했다.
“적 후방의 마도 병기.”
“방어선이 얇아진 틈을 노려야 한다.”
지도를 내려다보던 엘윈이 고개를 들었다.
“이건—정찰만으로도 위험해.”
“단독 투입은 무리야.”
그때였다.
“그럼 내가 갈게.”
쉐리였다.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쉐리, 그건—”
“비행 병력 단독 침투.”
“시간도, 경로도 내가 제일 적합해.”
쉐리는 침착했다.
너무 침착해서, 엘윈은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지원 없이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쉐리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엔, 평소의 장난기가 없었다.
“그게 전쟁이잖아.”
회의가 끝난 뒤, 엘윈은 그녀를 붙잡았다.
“쉐리.”
“너, 이 임무… 진심으로 원해서 자청한 거 아니지?”
쉐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다.
“엘윈.”
“넌 언제부터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아?”
바람이 세게 불었다.
쉐리는 고글을 고쳐 쓰며 말했다.
“난 기다리는 타입 아니야.”
“기도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안 맞아.”
그녀는 엘윈을 똑바로 봤다.
“네가 누굴 선택하든—”
“난 싸우는 방식으로 증명할 거야.”
엘윈의 손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증명 같은 거 필요 없어.”
“넌 이미—”
“아니.”
쉐리는 손을 뿌리쳤다.
“난 아직 아니야.”
그날 밤, 쉐리는 혼자 날아올랐다.
달빛 아래, 바람은 거칠었고
적의 진영은 생각보다 깊었다.
마도 병기의 포격이 시작됐을 때,
엘윈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쉐리—!”
통신은 잡히지 않았다.
폭발.
연기.
그리고—추락.
“비행 병력, 남서쪽 낙하!”
“쉐리입니다!”
엘윈은 생각할 틈도 없이 랑그릿사를 움켜쥐었다.
“전원 대기.”
“내가 간다.”
리아나는 그를 붙잡았다.
“엘윈… 당신이 가면—”
엘윈은 처음으로 리아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번엔… 선택해야 해.”
엘윈은 전장을 가로질러 달렸다.
그리고 연기 속에서, 무너진 성벽 아래서
쉐리를 발견했다.
부서진 날개 장비.
피로 물든 갑옷.
“왜 이렇게까지 했어…!”
쉐리는 희미하게 웃었다.
“봤지?”
“난… 진짜 위험한 데까지 갈 수 있어.”
엘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게… 날 설득하는 방법이야?”
쉐리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아니.”
“그냥—”
“날 잊지 말라는 거야.”
엘윈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전장 한가운데서, 규칙도 명령도 잊은 채.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네가 사라질 뻔했을 때—”
쉐리는 그의 갑옷을 붙잡았다.
“…무서웠어?”
엘윈은 대답했다.
“전쟁보다.”
그 순간, 엘윈은 깨달았다.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람과
몸을 던져 증명하는 사람둘 다를
더 이상 같은 저울에 올려둘 수 없다는 걸.
그리고 이 임무는
전쟁의 분기점이 아니라, 그의 마음의 분기점이 되었다.
🌙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 랑그릿사 II, 리아나 시점
천막 안에는 촛불 하나만 켜져 있었다.
리아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세요.
그 기도에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천막 밖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리아나…”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쉐리가… 임무 중에 중상을 입었습니다.”
촛불이 흔들렸다.
리아나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지만,
기도하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지금은요?”
그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생명엔 지장은 없습니다.”
“엘윈이 직접—”
그 뒤의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리아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 말은 쉐리를 향한 것이었고,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보고를 전한 병사가 물러난 뒤,
천막은 다시 고요해졌다.
리아나는 기도를 이어갔다.
이번엔 조금 달랐다.
엘윈이 흔들리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흔들리지 않게도.
머릿속엔 쉐리의 모습이 스쳤다.
바람처럼 웃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던 모습.
그 아이는… 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리아나는 이해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잠시 후,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그녀가 익숙한 발걸음이었다.
엘윈.
리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말했다.
“쉐리는… 살아 있죠?”
“그래.”
엘윈의 목소리는 낮았다.
“당신이 구했군요.”
엘윈은 대답하지 못했다.
리아나는 그 침묵을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그 아이를… 살려줘서.”
엘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아나, 넌… 화나지 않아?”
리아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화가 나면—”
“기도가 흐려질 것 같아서요.”
엘윈의 숨이 막혔다.
리아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미소는 있었지만, 그 안엔 결심이 담겨 있었다.
“엘윈.”
“전… 당신을 믿어요.”
“하지만 그 믿음이, 당신을 묶어두진 않길 바래요.”
그 말은 이별도, 고백도 아니었다.
선택의 자유를 건네는 말이었다.
엘윈이 떠난 뒤,
리아나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이번엔 쉐리를 위해,
그리고 엘윈을 위해,
마지막으로는—
언젠가 올 제 선택의 순간을 위해.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녀의 기도도.
🔥 바람이 멈춘 자리에서
― 랑그릿사 II, 쉐리의 사과
치료 천막 안에는 약초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쉐리는 침상에 앉아 있었다.
날개 장비는 벗겨져 벽에 기대어 있었고,
그녀의 어깨에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
천막이 조용히 열렸다.
리아나였다.
쉐리는 반사적으로 웃으려다—
멈췄다.
“어… 들어와.”
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그녀는 늘 그랬듯, 소리를 최소한으로 움직였다.
“몸은 좀 어때요?”
“살아 있잖아.”
쉐리는 어깨를 으쓱하려다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괜히 무리했네.”
잠시 침묵.
쉐리는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게, 하늘을 볼 용기가 없었다.
“그날 말이야.”
“임무 자청한 거.”
리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다.
쉐리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미안해.”
그 말은 짧았고,
쉐리답지 않게 곧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난…”
“네가 엘윈 옆에 서 있는 게 싫었어.”
리아나의 눈이 흔들렸다.
“기도하고, 조용히 버티고—”
“그런 식으로도 누군가를 지킬 수 있다는 게.”
쉐리는 손을 꽉 쥐었다.
“그래서 위험한 짓을 했어.”
“나한테서라도… 시선을 빼앗고 싶어서.”
리아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전… 당신이 그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어요.”
“알아.”
쉐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래서 더 미안해.”
리아나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용감해요, 쉐리.”
“하지만… 그날의 용기는 자신을 지키지 않는 용기였어요.”
그 말은 꾸짖음이 아니라, 기도 같은 조언이었다.
쉐리는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무서웠어.”
“근데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었거든.”
“뭔가요?”
“엘윈이.”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서 먼저 쉬는 얼굴이 되는 거.”
리아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감았다.
“전 쉼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당신은… 함께 뛰는 사람이었고요.”
쉐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겹치면 안 되는 타입이네.”
“아니요.”
리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더…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겠죠.”
쉐리는 침상 가장자리에 손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다시는 그런 식으로는 안 할게.”
리아나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약속할 수 있어요?”
쉐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엔 진짜로.”
리아나는 돌아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했다.
“쉐리.”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요.”
쉐리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기도했지?”
리아나는 미소만 남기고 천막을 나섰다.
쉐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람보다 무서운 건…”
“조용한 사람의 진심이네.”
⚔️ 멈춘 하늘 아래, 선택을 묻다
― 랑그릿사 II, 쉐리 × 엘윈
회복 직후의 훈련장은 이상하게 넓어 보였다.
바람은 불고 있었지만, 쉐리는 날지 않았다.
두 발로 서서, 엘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엘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응.”
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만큼은 아니야.”
엘윈의 얼굴이 굳었다.
“…그 말, 농담으로 하지 마.”
“알아.”
쉐리는 미소를 지웠다.
“그래서 오늘은 농담 안 해.”
침묵이 내려앉았다.
쉐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나, 리아나한테 사과했어.”
엘윈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왜?”
“왜냐면—”
쉐리는 고개를 들었다.
“나 때문에 다들 흔들렸으니까.”
엘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윈.”
쉐리가 한 발 다가왔다.
“그날, 내가 떨어질 때.”
엘윈의 손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네가 날 잡으러 왔지.”
“…그래.”
“왜?”
질문은 단순했다.
그래서 더 피할 수 없었다.
엘윈은 잠시 눈을 감았다.
“널 잃고 싶지 않았어.”
쉐리는 웃지 않았다.
“동료라서?”
엘윈은 대답하지 못했다.
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 대답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난 말야.”
“누군가의 선택지로 남고 싶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또렷했다.
“네가 날 필요할 때만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서는 사람이 되고 싶어.”
엘윈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래서 묻는 거야.”
쉐리는 한 발 더 다가왔다.
이젠 도망칠 거리도 없었다.
“난… 여기야.”
“다시 날 수 있고, 다시 싸울 수 있어.”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근데 네 마음까지 기다리며 날 수는 없어.”
엘윈의 숨이 길어졌다.
“쉐리.”
“난 아직—”
“알아.”
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나.”
그 이름을 말할 때, 질투는 없었다.
대신 각오가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듣고 싶어.”
쉐리는 눈을 마주쳤다.
“네가 날 어떻게 보는지.”
바람이 훈련장을 스쳤다.
쉐리는 날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았다.
엘윈은 천천히 말했다.
“넌… 내 옆에서 싸우는 사람이야.”
“나를 앞으로 밀어.”
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엘윈은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래서 무섭다.”
쉐리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왜?”
“널 잃으면—”
“난 앞으로 못 갈 것 같아.”
쉐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그럼 충분해.”
엘윈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봤다.
“뭐가?”
“네가.”
“나를 그렇게 본다는 게.”
쉐리는 한 걸음 물러섰다.
“아직 선택 못 해도 돼.”
“근데 기억해.”
그녀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난 뒤에서 기다리지 않아.”
“옆에서, 같이 간다.”
쉐리는 돌아섰다.
이번엔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았다.
그저 걷고 있었다.
엘윈은 그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선택은 미뤄질 수 있지만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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